유치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눅16:1-13) 한상운 목사님

(도입) 본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위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다.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제자들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바리새인들의 귀에도 들리게 해주셨다. 당시의 바리새인이 가졌던 ‘왜곡된 물질관’을 지적하셔서 일깨우시고,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성도로서 갖춰야 할 ‘올바른 물질관’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시다.
1. 본문의 비유는 ‘불의한 청지기의 옳지 못한 방법을 본받자’는 말씀이 아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의 비리가 발각되어 해고당하게 되자, 오로지 자신의 막막한 앞날만 걱정했다. 그러다가, 주인한테 빚진 자들의 채무를 탕감해주면, 나중에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뉘우치기는커녕, 해고통보를 받자마자 ‘주인의 허락 없이, 자기 마음대로’ 빚진 자들의 채무를 마구 탕감해줬다. 예수님은 이 자를 ‘옳지 않은, 청지기(:8a)’라고 분명하게 단언하셨다. 명백히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다. 불의한 청지기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고, 재물에 예속된 채, 그 재화(財貨)를 옳지 않게 사용하는 이 세상의 사람을 가리킨다(:8b)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청지기에게‘본받을 만한, 한 가지가 있다’고 하셨다. 본문의 청지기가 일관되게 불의했지만, ‘미래를 위해 대비하는 삶의 방식’만은 ‘지혜롭다’하시며 주님께서 칭찬하셨다. 그리고는 ‘불의의(worldly)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다. (청지기는 재물을 불의하게 사용했지만,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불의의 재물’이 굳이‘불의하게 획득한 재물’을 가리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불의의’는 ‘불의한 이 세상의’ 또는 ‘불의한 이 세상에 속한’ 이란 뜻이다. 재물이 가치중립적인 것이며, 문맥상 ‘불의’가 수식하는 단어가 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의의 재물’은 ‘하늘에 쌓는 보물(마6:20)’ 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불의의 재물’은 이 세상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영원하지 않는 ‘불의한 이 세상의 재물’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영원한 천국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3. 그렇다면, 불의한 이 세상에 속한 재물로 ‘사귀어야 할 친구’는 누구일까?
경제적으로 곤궁하고 핍절하여 ‘육적인 도움과 구원이 필요한’ 빈곤층과, ‘영적인 구원이 필요한’ 불신자다. 불의한 이 세상에서, (가치중립적인) 재물을, 영과 육을 구원하고 구제하기 위해 쓰라는 뜻이다. ‘불의한 이 세상’의 재물로, 필요한 자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친구를 사귀(고 이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행위는, 이 세상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칭찬받는 삶이 된다. 그렇지만,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남을 위해 베푸는 ‘선한 행위를 해야만 천국에 간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은혜 가운데 허락된다. 본문의 비유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이 세상의 악한 사람들도 자신의 유익과 앞날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데, 하물며, 빛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 물질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불의한 이 세상에만 목매지 말고, 영원한 처소인 천국의 삶을 위해 준비하는 지혜를 지녀야 한다.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의 나라임을 기억하라! 이 땅에서는 ‘정착하지 않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한다.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사용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 모두를 맡겨주신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천국을 예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4.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과연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마치 영원한 천국이 없다고 여기는 듯 행동할 때가 있다. 불의한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이, 이 땅의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아쉽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시간과 재능과 물질은,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해야 한다. 영혼을 구원하고, 곤궁한 그리스도인을 구제하며 부조하는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혜롭게 천국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허락받은 시간과 재능과 물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 모두는 하나님께서 ‘한시적으로’ 우리에게 맡긴 것에 불과하다(욥1:21, 롬11:36) 우리는 하나님의 재물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정치기이므로, 정직하고 진실하며, 신실하게 충성함으로써 감당해야 한다. (불의한 이 세상에서) 재물로, 친구를 사귀며 (복음을 전하는 것과, 하나님 나라를 향한) 미래를 대비하라는,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을 위해 충성해야 한다’ 는 충성의 개념으로 귀결된다. 주님은‘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 일에도 충성한다’고 하셨다. ‘작은 일’은 불의한 이 땅에서, 재물을 사용하는 경우다. ‘재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자’ 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하나님께 충성할 때’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 목적에 걸맞게 재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충성해야 할 주인이 두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두 주인 모두에게 온전히 충성하기는 불가능하다. 주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5. (맺는 말)
재물은 하나님께서 삶의 수단으로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중한 선물이다. 물질에 집착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착각한다면, 머지않아 자신의 우상이 된다. 물질을 하나님처럼 섬기면서 충성하게 된다.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 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말씀과 기도, 찬양과 예배’와 더불어서 신앙의 척도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재물을, 부디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사람들을 섬기며 구제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함을 보시고 더 큰 일을 맡겨주신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