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65. 우릴 위해 싸우시는 왕! (계19:11-16)

(도입) 장면이 다시 바뀌어서, 하늘이 열리는 것을 사도 요한이 보고 있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 직후에도 있었다. 그때는 하늘의 일부로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구원을 암시하는 ‘하늘 문’이 열렸다. 그런데, 이제는 ‘하늘 문’이 아니라, 완성을 의미하는 ‘하늘 그 자체’가 열렸다.
1.‘하늘 문’을 통해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계획이 완벽하게 실현되었다는 뜻이다.
이 장면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던 자에게는 한없는 위로와 확신이 된다. 에스겔의 놀라운 체험이 이를 뒷받침한다. 당시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패망하고 무려 5년이 지난 시기였다. 국권이 회복될 기미는 전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모든 상황이 악화될 뿐이었다. 털끝만큼의 희망조차 품을 수 없는 시기에, 하늘이 열리는 환상을 접하게 되었었다(겔1:1-3) 그 환상은 이스라엘이 회복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영광 안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했다. 밧모섬에 유배중인 사도요한에게도 동일했다. 교회를 핍박하는 로마는, 그럴수록 더 강성해지는 것 같았고, 함께 믿음을 지켜나가던 권속들은 지리멸렬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어떠한 조짐도 없었다. 더 이상 어떠한 기대나 소망을 품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순간에 ‘하늘 문’이 열렸다! ‘하늘 문’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진행되다가, 급기야 ‘하늘 그 자체’가 열렸다. 하나님의 계획이 폐기되거나 중단된 것이 아니라, 신실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결국은 완벽히 성취된다는 사실의 상징이다. 이 하늘은, 에스겔과 사도요한에게만 열린 것일까? 이 자리에 있는 우리도, 사도요한의 계시록을 통해서 그 하늘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2.이렇게 열린 하늘에, 백마를 탄 존재가 등장한다.
백마를 탄 존재는, 앞에서도 있었다. 거짓 선지자요, 예수님을 모방한 거짓 메시야다. 이와 달리, 본문의 존재는 검을 가졌고 많은 관을 썼는데, 그 관은 왕관으로 ‘디아데마’라고 한다. 그 눈은 불꽃같고(계1:14) 신분을 밝혀주는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다(요1:1) 예전과는 너무나 놀랍게 변화되셨기에, 당사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분이시며, 피에 젖은 옷을 입으셨다. 예수그리스도라는 뜻이다. 주님의 재림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끊임없이 말씀하셨던 약속의 완전한 성취다.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고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신다. 충신과 진실은 ‘신실하고 진실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약속했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 재림하신다’는 내용을 ‘신분과 속성이 담긴’ 그의 이름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의 끝이 보장되어 있다’는 암시가 함축되어 있다. 본문의 ‘싸운다’(;11b)라는 단어는 이 사실을 더욱 강력하게 확증해준다. 과거와 현재에도 공의로 심판하며 계속 싸우셨고 미래에도 끝까지 싸우셔서 ‘결국 승리하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3.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싸움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야만 끝난다. 지금, 우리가 전쟁의 한복판에 있다는 뜻이다. 믿음을 지키며, 전쟁의 포화 속에 있는 ‘전장(戰場)에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땅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긴 전투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싸우다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 종결된다. 우리는 어떻게 이 싸움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기신 어린양에게 붙어있으면 된다. 예수그리스도와의 연합한 교회가 패배하려면 그리스도를 패배시켜야만 가능하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패배하신 것처럼 보였으나 ‘죽음을 죽이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완벽히 승리하셨다. 어린양을 계속 보여주신 이유는, ‘그리스도는 결코 패배할 수 없고 이기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되새기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지금, 전쟁의 포화 속으로 믿음의 걸음을 걸어가다가 뼈가 부러지고 피가 흘러서 만신창이가 된 우리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로 가서 그리스도께 묶인 존재임을 확인하면 된다.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 개개인이 이겨야, 제대로 이겼다고 여기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는 질그릇 같은 존재다.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이 질그릇에 심히 큰 능력인 보배를 간직하고 있다. 그 보배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다(고후 4:7-10) 우리가 비록, 전쟁터에 살고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위축되지 않으며, 패퇴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도 승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치열한 영적 전투가 벌어지는 매일의 삶에서 매순간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매 순간의 삶에서, 이 승리를 ‘반복해서’ 확인하지 않으면 미끄러진다. 그래서, 성경은 ‘기억하라’라는 말씀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이를 위해서, 매일 이 승리의 현장으로 들어가서 확인을 해야 한다. 이것이 경건에 이르는 거룩한 습관이다. 매주일 함께 공적인 예배를 드리며, 매일 말씀 앞에 서는 삶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쉬이 익숙해지지 않지만, 은혜가 풍성해지고 감사하게 된다. 삶의 전투에서 반전을 일궈내는 천초기지와 교두보가 되어준다.
4.(맺는 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하늘이 열린 장면’으로 미리 보여주셨다. 이미 허락된 승리를 확인한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치열한 전장(戰場)에 있는 군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투에서 넘어지지 않는 비결은 승리하신 어린양에게 있다.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궁극적인 끝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 어린양에게 자신을 의탁하여 피난처로 삼아야 한다. 설령, 장대비 같은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 있다할지라도, 참되고 궁극적인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 여정에 우리 모두가 함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