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43.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계11:14-19)

(도입) 본문은, 요한계시록의 후반부에 전개될 환상의 내용을 함축한 서문의 성격을 띤다. 둘째 화(禍)인 여섯 번째 나팔의 재앙이 끝나고, 셋째 화(禍)인 일곱 번째 나팔의 재앙이 ‘속히 이르게 된다’ 는 언급이 이어진다(:14)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의 실현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①성도 개개인의 종말에 의해 고난의 때가 머잖아 그치며 ②교회를 핍박하는 세력에 대한 심판이 더 이상 늦춰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1.세상은, 거짓된 신과, 악한 통치자를 따랐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성부 하나님이신 ‘우리 주’와,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짐으로써, 성삼위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왕으로 통치하시게 되는 장면으로 전개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묘사다(:15) 이윽고, 예고했던 대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다. 그런데, 재앙대신에 찬양의 장면이 이어진다. 이유가 뭘까? 종말이,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만 화(禍)가 되기 때문이다. 성도는 재앙의 대상이 아니므로 찬양하게 된다(:15) 이 찬양에 대한 이십사 장로의 화답은 ‘감사’로 시작한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가 세세토록 이루어져, 친히 큰 권능을 잡아 왕 노릇하시는 장면인데,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찬양과 감사가 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2.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통치자가 되신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왕권이 영원하며, 약속하신 바를 신실하게 이루실 것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는가? 이 자체가 우리의 신앙과, 우리 신앙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까지 우리를 인도하신다. 이십사 장로들은 이 사실을 떠올리며, 감사했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사건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할 내용들임을 미리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의 통치에 반발하는 자를 심판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모든 자에게는 상을 주시며, 땅을 어지럽혀 망하게 하던 사탄의 세력을 멸절하여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예정이시다(:18)
3.여기서 잠시, 하나님께서 주실 상에 대해 알아보자. 상은 무엇이며, 등급이 있을까?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또는 상급)의 원어상의 의미는 ‘품삯, 임금, 보수’ 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은 우리의 수고와 무관하다. 등급도 차별이 없이 모두가 동일하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예화로 들려주신 품꾼의 비유에서 분명하게 밝혀주셨다(마20:1-16) 바울도 동일한 고백을 했다(딤후4:7-8) 주님을 위해 온갖 고난을 감당하며 헌신한 자신뿐만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의의 면류관이 상으로 예비되었다고 단언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들어간다. 우리의 수고와 행위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인류에게 차별이 없으므로, 그 은혜로 주시는 상도 차별 없이 동일하다. 등급이 있을 수 없다.
4.그렇기에, 대충하면 되고, 굳이 충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듯하다. 그 이유는, 아직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미 허락받은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과 복됨과 평안을 제대로 맛본 적이 없는 탓이다. 우리의 충성과 헌신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의 규모나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될 수 없다. 우리의 수고와 봉사는,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비례하여 나타난 자발적인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각각 자기가 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는 구절도 있다(고전3:8) 상충된 듯 들린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구절은, 받은 은사에 걸맞게 행하라는 의미에 국한된 말씀일 뿐이다. 두 달란트를 남긴 자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에게, 칭찬은 동일했다(마25:20-23) 단지, 그 영광의 누림에는 차이가 있을 듯하다. 하나님께서 주실 상에 대한 말씀을 왜곡하면 기복적인 신앙으로 변질된다. 감사와 기쁨의 헌신이 아닌, 소유를 위한 경쟁과 교회 안에서 높임 받으려는 수단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5.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이십사 장로의 감사 이후의 상황에 대해 살펴보자. 이십사 장로가 감사하며 경배하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다(:19) 성전 안에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하나님의 임재시에 나타나는 현상인 번개와 음성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었다. 열려있는 하늘문을 향해 우리가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의 처소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계시록의 제일 마지막에 묘사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모습은, 출애굽기를 통해 미리 보여주셨다(출15:13-18)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세상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게 된다. 낙담하여 넋을 잃고 어떠한 하소연이나 변명도 할 수 없게 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보좌로 당당하게 나아간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행복한 존재라고 했다(신33:29)
6.(맺는 말) 하나님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로 높이셨다. 우리의 구원이 이 만큼이나 가치 있고 복되다. 이러한 영광을 제쳐두고 땅의 것에 연연하여 움켜쥐려는 몸부림은 헛될 뿐이다. 우리는, 허락받은 은사와 재능을 따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을 ‘누리고’, ‘나누고 전함으로써’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해야 한다. 비록, 믿음의 여정이, 거친 길이고 좁은 문이지만, 우리를 돕는 방패와 영광의 칼이 되시는 성삼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이것이 우리의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