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32. 유혹과 정화의 시간(2) (계6:1-8)

(도입) 어린양이,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의 인(봉)을 하나씩 뗄 때마다, 네 생물들이 각각, ‘오라!’고 소리치며 호출한다. 그 명령에 따라, 각기 서로 다른 색의 말을 탄 자가 한명씩 등장한다.
1.어린양이 두 번째 인(봉)을 열자, 이번에는 두 번째 생물이‘오라!’고 명령한다. 이에 따라 붉은 말을 탄 자가 출현했다. 붉은 색이 상징하는, 살육과 피흘림을 자행하여, 땅에서 화평을 제하고 서로 죽이도록 했다. 짐승을 도살할 용도의, ‘박해’를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한, 큰 칼도 받았다(:3) 이 장면은 종말의 때의 상황에 대한 묘사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그 시점부터 시작하는 말세의 때에는 이 땅에 살육과 전쟁으로 유혈참극이 끊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 사용한 ‘죽음’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성도의 죽음만을 특정한다. 영적으로 해석할 때, 이 환상을,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로 전하라고 하셨던 점과, 흰 말을 탄 거짓 선지자에 이어 등장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붉은 말을 탄 자가 나타난 장면은, 믿음의 사람들이 당하는 핍박과 환란을 의미한다. 즉, 교회와 관련한 안팎의 원인으로, 성도 간의 갈등과 분란이 야기되어 서로 죽고 죽이게 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면, 종교와 정치의 혼란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해지는, 핍박과 죽음도 포괄한다(마10:34-36). 이 사건은 단지, 한 세대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을 모두 포함하는) 종말의 때의 모든 시간에 걸쳐 발생한다. 그 정점이 종교개혁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같이 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셨다 (마24:9-12) 사랑이 식어지고 진리와, 비 진리인 세상의 가치가 대립하고 충돌하여 ‘위장된 화평’이 깨어진다고 하셨다(마10:34-36).
2.인(봉)을 제거 할 때마다 등장하는 자는,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시작하고 있나? 각각 네 생물중 하나의 ‘호출을 받고서’ 출현했고, ‘허락’을 받아야만 행할 수 있었다. 스스로의 의지와 판단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이 모든 핍박과 도전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아래에서,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하는) 네 생물의 통제를 받아 이루어짐을 암시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진리와 비 진리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교회의 순결과 거룩함을 지켜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단히 허용하신 정화의 과정이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그 시점까지, ‘줄기차게’ 진리와 비 진리의 다툼이 이어진다. 세상적 가치가 교회안에 침투하여 끊임없이 진리를 훼손하며 도전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교회와 정치, 어떤 경우에는 교회와 세상권력과의, 억압과 갈등으로, 비 진리인 이단의 유혹과 침투를 몰아내고 방어하기 위한 투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죽음을 댓가로 치러야 하는 경우까지 이르기도 한다.
3.어린양이 세 번째 인(봉)을 해제하자, 검은 말을 탄 자가 호출을 받았다. 그는 암울한 현실을 상징하는 검은 색의 말을 탔다. 경제적인 빈곤을 나타내는 저울을 가진 채 등장한다. 저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는 재앙의 상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레26:26) ‘한 데나리온에 밀은 한 되요, 보리는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는 말씀은(:6) 말세에, 생존에 필요불가결한 밀과 보리의 가격이 급등하여 서민의 삶이 힘들어짐을 말한다. 반면에, 안락한 삶과 풍요를 상징하는 감람유와 포도주로써, 삶의 질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풍족한 시대가 됨을 의미한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되어 고착화된다는 뜻이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그랬다. 교회가 위치한 그 곳은 물질적 풍요를 누렸으나, 성도의 경제상황은 열악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우상숭배와 음란행위가 필수인 경제공동체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검은 말 탄 자를 불러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세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곱 교회처럼, 세상에서 불이익을 자초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4.세상은, 지금도 감람유와 포도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는 ‘적색 순교’까지는 아닐지라도, ‘박탈과 궁핍, 고립과 외면’을 당해야 하는 ‘백색순교’의 삶을 살아 내리라 각오하고 결단해야 한다. 믿음의 이유는 감람유와 포도주가 상징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고 우리 안에 이루어진 것을 확인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불의를 지향하는 세상에 등을 돌리고 살아야 할까? 오히려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서 이루어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격을 갖춰서,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야 한다(고전13:4-7).
5.(맺는 말) 거짓 선지자가 발호하는 종말의 때에, 믿음의 길을 지키려는 성도를 향해, 세상은 끊임없이 도전과 환란을 겪게 하며 갈등과 억압이 따르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를 통해, 교회를 온전케 하고, 성도 개개인을 정결케 하신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성도가 직면한 모든 환란과 갈등이 해소된다. 정치, 경제 사회적인 개혁으로는 불가능하다. 죄로 오염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을 갈구하며 소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켜내는 거룩한 산 제물로서의 삶, 빛과 소금으로 드러나는 삶을 매일의 삶 속에서 살아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진리의 말씀이 이 땅 가운데 편만하게 전파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도래하도록 기도하면서,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