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29. 어린 양을 향한 새 노래 (계5:9-14)

(도입) 본문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죽임을 당했던 어린양이 하나님으로부터 두루마리를 취하자, 그에게 경배하던 이들이 새 노래로 찬양했다(:9) 이어서, 그들을 둘러싼 수천수만의 천사들과(:11) 땅위와 땅 아래, 바다 위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도 함께 앞다투어 찬양에 동참했다(:13) 이에, 네 생물이 아멘으로 화답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했다(:14) 오늘은, 이를 통해 종말의 의미를 되짚어 봤으면 한다. 1.이들이 이토록 감격에 겨운 찬양을 하는 이유가 과연 뭘까? 어린양이 인봉을 해제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담의 죄로 인해, 인간뿐만 아니라, 땅도 저주를 받아 척박하게 되었다(창3:17-18) 땅이 받은 저주는 썩어짐의 종노릇이다. 이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을 원했다(롬8:21-23)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종말의 그 날이 도래하면, 어린양이 인봉을 떼기 시작한다. 모든 피조물이 죄의 얽매임과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로 들어가게 되고 모두 함께 찬양하게 된다. 종말의 그날, 봉인이 풀릴 것을 생각할 때마다 설렘과 기대가 넘친다. 인간이 죄를 범한 탓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이, 파괴되고 오염되었는데, 창조 때의, 원래 모습으로 회복되기 때문이다. 종말은, 창조의 회복이자, 재 창조다. 단순히 끝내고 종결한다는 의미만이 전부가 아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이들을 심판하는 일에만 한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판과 더불어서, 우리의 형상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회복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창조의 부요함과 온전함을 누리는 은혜의 풍성함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신다. 우리와 더불어, 모든 피조물까지도 이런 은혜를 함께 누리는 때가 종말이다. 이들이 감격과 기쁨으로 찬양한 이유다. 2.본문이, 당시의 성도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당시의 성도들에게, 죽임당한 어린양이 참된 경배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믿음의 여정에서 정말 중요한 사실이지만, 연약하여 쉽게 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로마시민과 피지배민족에게 숭배의 대상처럼 보이는, 로마황제는 참된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음도 인지시켜주고 있다. 범접할 수 없이 거룩하고, 크신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만이,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와 수천수만의 천사와 모든 피조물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일깨워준다. 3.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보자. 첫째,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자인지를 알게 해준다. 우리가 순종하면 모든 만물이 복을 받고, 우리가 범죄하면 삼라만상이 저주를 받는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이 땅의 피조물을 함부로 대하면 만유가 황폐해진다. 여기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공적인 책임이 있다. 이상기후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재해가, 성도인 우리의 잘못으로 인함임을 기억하자. 환경보호는 환경보호단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다스리라고 맡기셨기에, 은혜 안에서 작은 일이라도 솔선하자. 대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은, 일상에서 하나님의 바른 질서를 세워가려는 작은 실천으로부터 시작한다(시131:1) 다음 세대를 위한 의미 있는 헌신이기도 하다. 우리위상의 존귀함을 확인하는 계기도 된다.
둘째, 우리의 입술이, 어떤 대상을 노래하고, 어떤 노래를 채우는지 돌아보게 한다. 세상의 노래 대부분은 자신이 대상이다. 자신을 위로하며, 과거에 대한 회한과 후회를 담고 있다. 진정으로 우리가 노래할 대상은, 보좌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과 죽임을 당하셨던 어린양이시다. 그리고 그 노래는, 출애굽하게 해주셔서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심을 찬양하던 예전(출19:5-6)과 다른, 새 노래가 되어야 한다. 새 노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찬송으로, 주제는 죽임 당한 어린양이시다(:9-10) 새 노래는 각 나라와 족속, 백성과 방언 가운데서, ‘주님의 피로 사신 백성들만’이 부를 노래다. 모든 인류, 누구에게나 허락되지는 않았음을 뜻하다. 창세전에 이미 선택된 사람만 구원하시기로 제한하여 작정하셨기 때문이다(엡1:4) 새 노래는, 어떠한 자격이나, 아무런 공로가 없지만, 모든 자들 중에서 구별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나라와 백성, 대제사장과 기업이 되어 왕노릇 하게 될 은혜를, 찬양의 내용과 제목으로 삼아야 한다. 종말이 되면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의 권위를 다시 부여받아 이 모두를 회복하게 된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 때문이다. 우리가 찬양해야 할 가장 타당한 이유다. 경배(worship)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가치를 인정하고 감사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진정한 경배는, 우리의 가치와 하나님의 어떠하심의 가치를 깨달은 자만이 의미 있게 할 수 있다. 모르면 언제든 이단에 빠질 우려가 있다. 찬양의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찬양의 삶을 살아내게 도와주신다. 받은 은혜를 찬양하는 자가 되어야만 그 은혜가 자신의 것이 된다는 뜻이다. 4.(맺는 말) 하나님은 어린양을 통해, 새 노래를 부르게 하셨다. 옛 노래는 출애굽하게 해주신 하나님에 찬양이다. 이에 견주어 새 노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기업을 허락하시고, 천지 만물에 대해 ‘정복하고 다스리는 왕’의 역할을 하도록 회복시켜 주시며, 대제사장이 되게 해주실 은혜를 찬양한다. 노래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할 때, 삶과 무관하게 습관에 따라 읊조리는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 찬양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충분히 묵상하고 되새기며 찬양해야 한다. 2023년은 구체적인 은혜의 내용을 생각하며, 죽임당한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찬양의 대상으로 하는 해가 되길 바란다. 노랫말이 삶이 되고, 고백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삶을 영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