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67. 천년 왕국(계20:1-3)

(도입) 사도 요한이 또 다시 새로운 장면의 묘사를 시작한다. 천사가 ‘옛 뱀, 마귀, 사탄’이라고 하는 용을 잡아 결박하고 무저갱에 던져 넣는다. 감금하고 인봉하여 (상징적 의미의) 천년이 경과하기까지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인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모습은 ‘새롭다’ 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서술했던 광경에,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 서술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1. 본문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천년 왕국’의 개념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자.
세 가지 학설이 있다. 천년 왕국 이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전천년설과 천년 왕국 이후에 재림하신다는 후천년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성경과 맞지 않다. 나머지 하나는, 가장 성경적인 무천년설이다. ‘천년’은 수치상 천년이 아니라, 충만하고 완전함을 ‘상징’하는 기간이라는 견해다. 무천년설에서의 ‘천년’은, 종말이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종말이 완성되는 그리스도의 재림까지의 전 기간을 가리킨다. 즉, 무천년설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그 수가 차기까지의 모든 기간을 ‘천년(왕국)’이라고 표현한다. 근거는 성경에 있다. 해를 옷으로 입은 여인이 메시야를 출산하려 할 때, 붉은 용이 태어날 메시야를 죽이려 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태어나 하나님의 나라로 승천하셨다. 그때 하늘에서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붉은 용과 그의 추종자들을 패퇴시켜 하늘에서 쫓아냈다(12:7-9) 붉은 용이 이렇게 축출된 ‘동일한 사건’을, 본문에서는 ‘갇혔다’고 ‘표현을 달리하여’ ‘중복서술’했다(살후2:5-6, 마24:3-36) 사실이 이러한데도, 각기 다른 사건인양, 시간의 순서로 무리하게 해석한 탓에, 모순된 학설이 생겼다. 상황에 대한 ‘묘사의 순서’를, 사건이 발생한 ‘시간의 순서’로 해석함으로써 생긴 오류다. 컵은 관찰하는 방향에 따라 형태가 다르다.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과정의 기록도 이렇다.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을 다르게 하여’ 앞에서 이야기했던 사실을 함축함으로써 ‘중복하여’ 기록한 말씀이다.
2.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셨다(히2:14)
‘멸한다’는 ‘완전히 쓸모없게 하다. 활동을 중지시키다’는 의미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사탄의 활동을 ‘중지시켜버렸다’는 뜻이다. 본문의 ‘쇠사슬로 결박하여 무저갱에 가뒀다’와 ‘동일한 상황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붉은 용인 사탄은 더 이상 유혹하지 못한다. 그런데 왜, 교회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을까? 사탄이 갇혀서 활동할 수 없게 되자, 하수인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며, 큰 음녀 바벨론과 같은 존재들이다. 이들을 통해 끊임없이 믿음의 사람들을 유혹한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있다. 이 (천년왕국의) 기간이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고 온전하게 하여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들을 채워나가는 시간이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현재의)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하는 시간이다(:4)
3. 그런데, 우리가 지금 ‘왕 노릇 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수긍할 수 있나?
적색 순교는 아닐지라도, 백색 순교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느라, 날마다 발버둥질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도 없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왕 노릇을 한다고 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연합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통치하고 계시니,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는, 그의 통치에 참여함으로써 함께 왕 노릇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현실이, 왕 노릇하는 것과 전혀 판이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탄의 하수인들이 우리를 유혹하거나, 때로는 억압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온전히 서 있으면,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로 말미암는 은혜를 누리고 확인하는 삶을 살게 된다.
4.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왕노릇 하는 우리에게 주신 궁극적인 은혜는 평안이다.
예수님을 믿지만 우리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너무 힘들어서 좌절하고 때론 주님을 부인하며 떠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파도가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눈보라가 치고 음침한 골짜기도 있다고 하신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다. 풍랑 중에서도 (나뭇잎 같이 작은 배의) 고물에서 평안히 주무시던 주님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우리와 연합하신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으므로,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위축되거나 주눅들지 말라 하신다. 주님의 이기심으로 당당하게 살면서 평안을 누리라고 하신다(요16:32-33)
5. (맺는 말)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라! 하나님의 의로움을 이 땅에 드러나게 하는 자로 살아가라! 사탄의 하수인은 우리로 하여금 이와 같은 신분을 망각하게 하려한다. 세상의 것을 통해서 유혹하여 넘어뜨리려 한다. 그래서 환란이나 핍박이나 곤고가 있다. 하지만, 환란이나 핍박이나 곤고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8:35)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평안을 누리게 하신다. 성도된 우리가 받은 복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누릴 영원한 영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왕노릇 하는 신분임을 기억하며 늘 당당하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