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46. 땅에서의 전쟁(계12:13-17)

(도입) 본문은, 일곱 대접의 재앙직전의, 막간의 상황에 대한 묘사다. 지난번의 ‘하늘에서의 전쟁’에 이어, 오늘은, ‘땅에서의 전쟁’(계12:6)에 관해 부연하여 설명한다.
1.땅으로 내쫓긴 용이, 남자 아이(=그리스도)를 출산한, 여인, 즉, 교회를 박해했다(:13)
‘박해’의 원 의미는 ‘사냥하(기 위해 뒤쫓아 간)다’는 뜻이다. 사냥하듯이 추격해서, ‘괴롭히거나, 함정을 파서 빠뜨리고, 덫을 놓아’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과 은혜의 누림에서 이탈하도록 핍박한다. 하지만, 이 공격은 실패한다. 남자 아이를 출산한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로 피신했기 때문이다(:14) 광야는,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가장 합당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이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악한 영의 세력이 교회공동체를 공격할 때,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능력으로 방어막을 쳐주시거나 직접 물리쳐주시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두 날개’를 주셔서 스스로 능히 이겨내어 감당케 하신다. 그렇다면, 큰 독수리의 두 날개(:14a)는 과연 무엇일까? ‘두 날개’는 ①이스라엘을 업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며(출19:4) ②하나님께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의 은혜를 입는 것이다(신32:10-14) ③또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부여하시는 새 힘이다(사40:31) 이를 통해 양육됨으로써, 우리를 사냥하려는 사탄의 도발을 견뎌내고 물리쳐서 이길 수 있게 하신다. 구체적으로는, 성막과 (모세오경으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와, 그 말씀에 의해 새 힘과 보호하심,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을 받게 된다. 이 두 날개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안전한 양육의 장소로 인도함을 받는다. 그곳에서 가나안을 상속받기에 합당한 자로 자라게 된다. 하나님은, 성도를 이렇게 양육시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견뎌내게 하심으로써, 교회가 견고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해주신다.
2.사탄의 두 번째 공격은,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해치려는 것이었다.
성경에서, 물은 ①악한 세력을 의미한다(시144:7-8) ②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불의함을 암시하기도 한다(시18:4) 그러므로, 강같이 많은 물은, 압도적으로 악하고 불의한 거대세력을 상징한다. 이들은 물리적인 압제보다는, ‘입에서 나오는’ 거짓된 교훈으로, 꾀고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여, 진리에서 떠나게 한다. 우리의 영적신분에 대해 변절하게 한다. 그래서, 주님은 말세에 직면할 가장 큰 핍박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입에서 나오는’ 거짓 교훈과 이를 뒷받침하는 듯한, 표적과 기사라고 하셨다(마24:23-24) 거짓 가르침인 미혹의 강물로, 교회(의 모체인 여자)를 현혹하여 순식간에 쓸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궤계는 성공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땅이 갈라지게 하시고, 그 속으로 물이 사라지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짓된 세력의 교훈을 무력하게 하셨다. 출애굽 때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고라의 자손들과 그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자, 땅이 갈라지게 하셔서 악한 자들이 모두 그 속으로 매몰되게 하셨다(민16:1-3) 하나님께서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함을 수호하시는 방법을 보여주신 사례다. 본문은, 이를 차용하여 설명한다. 이단의 거짓된 교훈과 불의한 세력의 침탈로부터,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을 지켜내기 위해, 진리에 대항하는 모든 시도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두 한꺼번에 매몰시켜 무위에 그치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물리적인 도피처나 보호막이 아니라, 신앙의 정절과 순결함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심으로써, 교회가 거룩함과 진리를 보전하게 해주신다.
3.그래서, 바울은,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 교회를 부탁한다고 고백했다(행20:32)
교회가 하나님의 순결함과 성결함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은, 목회자의 탁월함이나, 조직의 효율성이나, 반듯한 시설에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와 그 은혜의 말씀이 감당하신다. 창수(漲水)와 같이 악한 자들의 공격도 주와 은혜의 말씀으로 물리치게 하신다(마7:24-27) 그런데,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려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려고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단지,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신앙을, 주문이나 부적처럼 도구화 한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하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신뢰를 키워가는 씨름이다. 출애굽하여 가나안까지는 대략 십여 일이 소요될 뿐인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사십년이나 광야를 떠돌게 하셨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시간들을 거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디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만큼, 누리게 하셔서, 결국은 ‘기업을 얻게 하는 자리’에 이르게 하시기 위함이시다(민33:2-49)
4.(맺는 말)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을 늘 기억해야 한다. 가령,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함을 받았는데, 그 결과가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동떨어진 광야라면, 어찌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업을 이어받기에 합당한 자로 준비되도록 양육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현재, 자신의 기도와 간구나 기대와 달리, 황량한 광야에 자신만 혼자 내버려진듯한 생각이 드는가? 하나님에 대해 더 알아가도록 배려하시는 양육의 과정임을 명심하라! 그래서, 방치하지 않으신다. 두 날개를 주시고, 그 날개 안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와 공급하심을 받게 하신다. 이 모든 과정에서 ‘비 진리’ 의 도전을 이겨내게 하신다. 이 시간들을 통해 다듬어주시고 빚어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어, 하나님의 기업을 넉넉히 이을 자가 된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