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28. 향기가 되는 기도 (계5:8)

(도입) 죽임을 당하셨던 어린양이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자,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지고 어린양 앞에 엎드렸다.
1.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다(:8)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단순히 ‘귀로 들어주는 수준’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으신다. 금 대접에 담긴 향으로 표현할 만큼, 기뻐하시며, 존귀하고 가치 있게 여기신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섭리를 따라 행하시는 이유(動因)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끊임없이 요구하신다. 그 이유는, 그 기도가 반드시 성취되게 해주시겠다는 응답의 방편이기 때문이다(렘33:2-3, 마7:7-11)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기도응답에 대한 보증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도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요구하시고, 그 기도를 들으실 뿐 아니라,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자신의 안일과 욕심, 육신의 쾌락을 위한 정욕의 간구는 응답받지 못한다(약4:3) 하나님께 향기가 되려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땅의 질서와 통치원리를 따라 사는 자들을 심판하심으로써, 믿음 때문에 죽임당한 영혼들을 신원해달라는 기도여야만 한다(계6:9-10)
2.죽임당한 영혼을 신원해주기를 간구하는 성도의 기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일까?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와, 그녀의 하소연을 무시했던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눅18:1-8) 당시에, 과부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었다. 과부는 (죄와 허물로 인해, 탐욕의 노예가 되어 서로를 억압하는 악한 시대일지라도) 하나님의 공의와 질서에 의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배려를 받아야 하는 대상을 대표한다. 세상이 악하다보니, 이 과부는 하나님의 공의와 질서에 의한 은혜와 공급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재판관에게 신원했다. 재판관은 구약시대의 사사와 같은 직능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안에서의 질서가 이루어지도록 시행해야하는 임무가 있다. 고아와 과부 같이 헐벗고 소외된 계층에게도 하나님의 공의가 흘러가게 하여, 기쁨과 감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세우신, 믿음의 공동체를 수호하는 자다. 이와 더불어서, 이러한 은혜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을, 하나님의 질서 안에 들어오게 하는 역할도 한다. 과부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인도하심과, 공급하심과 보호하심을 원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한 통치와 질서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관에게 신원해주기를 간청했다. 죽임을 당한 성도들이 신원해달라고 한 까닭도, 이 과부와 같은 원통함 때문이다.
3.우리의 기도가 이 과부의 호소와 같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가 된다.
선지자 하박국도 같은 이유로 절규하며 기도했었다(합1:2-4) 죄악과 불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대 주재이신 하나님의 통치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다면, 믿음을 지키려는 성도들이 고통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이 성도 안에서 완성되어 누리게 해달라고 부르짖었다. 이 또한,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찬양하며, 주님의 영광 안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소망이, 속히 이루어지도록, 신원해 달라는 의미였다. 금 대접에 담기는 향기는, 성도 개개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원수들에 대한 징계와 앙갚음을 통해 보복해달라는 기도가 결코 아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도록 구하는 기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종말의 그날을 하루라도 빨리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다. 이런 기도만이 하나님께 향기가 된다.
4.그러면, 우리는 종말을 맞을 준비를 위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나? (요일3:2-3)
종말의 그날이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온전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우리를 깨끗케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항상 인식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공의로운 통치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온전케 됨으로써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맛보는 삶을, 기도하며 살아내야 한다. 기도는 주문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가 실현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주님께서 다시 올 때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기도가 삶이 되고 기도를 삶으로 살아냄으로써, 우리의 내면이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에 온전히 사로잡히면,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에 사는 자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죄와 사망아래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속히 완성되고 회복되기를’ 신원하는 기도를 드리면서, 기도한대로 삶을 통해 살아내야 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다스림과 통치와 공의가 나타나도록, 우리 자신을 날마다 깨끗케 하고, 온전하게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5.(맺는 말)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이 땅에는 여전히, 사망과 고통, 눈물과 아픔이 있다. 세상이 이러하므로, 우리는 세상을 위한 대제사장으로서, 신원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죄와 사망의 영향 아래에 있는,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와서 참된 화평과 생명의 부요함을 누리기를 소망하는 기도, 하나님께 향기가 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신원하는 기도를 통해 우리를 온전케 할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누릴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진정한 통치와 다스림이 나타나게 하는 삶을 살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다가올 미래와 그 궁극인 종말에 대해서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오늘을 포함한 매일의 삶을 하나님 나라의 기쁨 안에서 살게 되므로, 영원까지 늘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이미, 이 평안을 허락받았다. 이미, 우리에게 있지만, 누릴 수 있는지의 여부는 신원의 기도가 관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