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71.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1) (계21:1-8)

(도입) 이제부터는, 요한계시록의 결론 부분이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두는,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에 대한 내용이다(21:1-8) 그 다음은 예루살렘성의 구조와 축성(築城)의 구성소재에 관한 서술이다(21:9-22:5) 나머지 부분은 종결부다(22:6-21) 마무리하는 인사말에 해당한다. 오늘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의미’ 와 그것을 누리는 주체로서 교회인 ‘새 예루살렘’에 대해 함께 살펴보기를 원한다.
1. 사도요한이 또 다시 보게 된 장면은 ‘새 하늘과 새 땅’이다.
큰 음녀인 큰 바벨론과 대조를 이루는 개념이다. 죽음의 처소와 악의 본거지를 상징하는 ‘바다가 없어졌다’ 는 사실은 죽음과 죄악이 있을 수 없는, 의로운 곳임을 나타낸다. ‘허물과 죄로 오염된 이 세상’ 이 ‘본질적으로 새롭게 된다(카이노스)’ 는 뜻이다. ‘없던 것에서 새로이 만들어진다(네오스)’ 는 의미가 아니다. 이전의 것을 없애고 다시 새로 창조(네오스)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땅과 하늘을 ‘질적으로 변화시켜 새 것(카이노스)이 되도록 한다’는 뜻이다. 비근한 예가 예수님의 부활체다. 부활 후에도, 부활 전과 ‘동일한 인물’이시지만, 부활하셨을 때, 몸이 ‘새롭게 변화된(카이노스) 부활체’ 가 되었다는 사실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늘에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이 내려왔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누릴 주체임을 암시한다. 오늘날의 ‘교회’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교회 공동체가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물을 씻겨주신다. 슬픔과 아픔과 고난을 해결해 주신다. 위로해주시고, 힘주시고, 회복시키신다. 더 이상 애통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아프지도 않고 죽음도 경험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믿지 않던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 못에 던져져, ‘둘째 사망’을 당한다.
2. 그렇다면, ‘새 예루살렘’ 인 교회와 오늘날의 교회는 어떻게 다를까?
오늘날의 교회는,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카이노스)’ 자의 공동체다(고후5:17) 아직, 우리의 상태는 연약하고 불완전하다. ‘새 예루살렘’인 교회와 동등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주시려는 은혜의 누림은 동일하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보게 하시려고 부르신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첫 번째 창조에서 누릴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하심과 온전하심’ 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하신다. 그때까지의 과도기에는, 이 땅에서 그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과 땅에서도 함께 하신다.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위로하시고 힘주시며 은혜를 베푸시고 고치신다. 이를 위하여 부른 공동체가 교회다. 에덴을 통해 허락하시려고 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다.
3. 그런데, 왜? 이 땅에서 우리는 이 은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할까?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막9:18)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야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우리의 연약함이, 늘 무너지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 고 간구하며 엎드려야 한다(막9:24)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미리 맛보는 천국’으로서의 ‘교회’ 를 허락하셨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위로하심과 치유하심을 누리게 하셨다. 그것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방편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다. 일부의 현대인들은, 믿음과 신앙생활을 장신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신분이나 삶의 한 부분을 꾸미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다. 바른 신앙의 자세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다.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삶의 이유와 근거를 하나님에게서만 찾아야 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이런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의 임재를 분명히 확인하게 된다.
4. 오늘의 본문은, 요한계시록에서 처음 언급하는 말씀이 아니다.
선지자 이사야(사2:2-3)와 에스겔(겔36:33-36, 37:26-28) 그리고 스가랴(슥14:8)를 통해, 종말에 대해 이미 전하신 말씀이다. 왜? 이전에 하셨던 말씀을 본문에서 되풀이 하실까? ‘종말은 우연이 아니다’ 는 사실을 강조하시기 위함이시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한 치의 착오 없이, 예정대로 진행된다’ 는 사실을 더욱 힘주어 밝히신다. 우리는, 확신할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곤 한다. 하지만, 주님은 ‘근심걱정 말라’ 고 하신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열심과 우리를 향한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누리게 할 것임을 본문을 통하여 말씀해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5. (맺는 말)
끝을 알면 두렵지 않다. 본문은, 끝이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주신 말씀으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신다.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가, 늘 실패하고 실수하다보니 ‘새 하늘과 새 땅’ 을 누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기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로 하여금 이기게 하신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어디까지 인도하실 것인지를 반복해서 확인시켜주신다.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렇게 할 힘과 믿음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지혜와 믿음을 구해야 한다. 이 땅에 이미 허락한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를 통해, 누리면서 세상에 흘러가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