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42. 두 증인 (계11:1-13)

(도입) 여섯째 나팔의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도요한으로 하여금 ‘이들을 위해’, ‘가시와 찔레가 무성하고, 전갈이 득실대는’ 선지자의 삶을 살라고 권면하셨다. 본문은, ①이러한 선지자적 사명을, 이 땅에서 실현할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며 ②구체적으로, 누가 이 일을 수행할런지에 대한 설명이다.
1.사도요한에게 두루마리를 건넨 천사가, 지팡이와 같은 갈대로 ‘측량하라’고 했다.
‘측량하라’는 명령은, ‘회복과 보호’를 암시한다(겔40장-48장) 이러한 ‘회복과 보호’의 은혜는,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에게만 해당한다. 반면에, 성전의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라’고 하셨다. 보호하지 않고 방치하여 짓밟히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의 본질’만은 반드시 지켜 보호해주시지만, 세상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침략과 도전에 의해, 교회공동체가 짓밟혀서 마침내 순교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기간은 마흔 두 달(:2) 즉, 천이백육십일(:3)이고 햇수로는 삼년 육개월이다(단7:25) 이 기간의 상황은,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에, 애굽과 팔레스타인지역을 통치하며, 삼년 육개월동안 성전을 모독했던 안티오쿠스 4세의 만행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신의 현현’이라는 의미로 자칭 ‘에피파네스 Epiphanes’ 라고 했으나, 정작, 당시의 사람들은 ‘미치광이’라며, ‘에피마네스 Epimanes’ 라고 불렀다) 이 미친 권력자는, 성전의 제단에 유대인이 극도로 혐오하는 돼지를 제물로 올려 더럽히고, 제우스의 상을 세워 경배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했기 때문이다(단11:31, 마24:15 cf.수전절) 본문의 삼년 육개월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의견이 있다. 첫째는, 교회가 ‘종말의 전 기간에 걸쳐서’ 본질적인 부분은 보호를 받으나, 외적인 환경에 의해 지속적으로 침탈당해 수치와 모멸을 받는다는 해석이다. 또 하나는, 종말의 때에 ‘언제라고 확정할 수는 없으나’ 증인의 삶을 사는 공동체가, 순교까지도 감당해야 할 만큼의 처절한 도전에 맞닥뜨려져서. 파괴되는, 대환란의 ‘특정 시기’라고 주장한다. 두 가지 모두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2.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구체적으로‘누가? 어떻게?’ 이 사명을 수행할까?(:3-13)
이 일을 맡은 자는 두 증인인 두 감람나무(슥4:14)와 두 촛대다(계1:20) 감람나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인, ‘왕, 선지자, 제사장’을 의미하고, 촛대는 교회를 상징한다. 즉, 세상을 위한, 촛불이면서, 제사장(여호수아)의 사명과 통치자(스룹바벨)의 역할을 담당하는, 교회에 의해 이 사역이 진행됨을 암시한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며 선포하는 예언의 권세를 받았다. 말씀을 대적하는 이들에게 비가 오지 않게 했던 엘리야와, 물이 피가 되도록 했던 모세에게 허락하신 능력이, 말씀을 선포할 때, 함께 하기 때문에 권세라고 한다. 교회의 말씀선포의 권위를, 엘리아와 모세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의 위상과 동일하게 인정하신다는 뜻이다.
이 권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만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굵은 베옷을 입고 이 일을 하라고 하신다. 이 선포의 핵심이 회개이기 때문이다. 회개의 선포가 끊임없이 전개되도록 해야 한다. 진정한 회개의 선포는, 죄를 드러내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알리면서 그 나라로 초청하는 것이다(마3:2, 4:17) 그런데, 어느 시기가 되면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에 의해,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여, 외견상,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환란의 때를 맞이하게 된다(:7) 하지만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회복케 하심이 변함없다(:1-2) 두 중인이 사흘 반 동안이나 매장되지 못하는 수치와 모멸을 당하지만, 하늘에서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 되살아나게 하고, 영광스럽게 승천한다.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죽는다. 남은 자는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3.그러므로, 종말의 때에, 우리는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음부의 권세에 의해 계속해서 짓밟히겠지만, 결국은 승리한다. 하나님이 놀라운 권세를 허락하셨기 때문이다(마16:18-19) 주님께서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와) 교회공동체에 주셨다(마16:19, 18:18) 회개의 선포는, 천국의 열쇠를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존재다. 소금이 소금끼리, 빛이 빛과 함께 하면 의미가 없다. 소금은 부패한 곳의 방부제가 되어야하고, 빛은 어두운 세상을 밝혀야만 존재의 가치가 실현된다. 우리는 세상을 향한, 분명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선지자의 자세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가야 한다. 이 일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종말을, 이 땅에서의 삶의 구차함의 도피처로 삼지 않기를 바란다. 종말에 우리에게는 증인으로서의 사명이 있음을 명심하라! 종말의 전 기간에 비하자면, 삼일 반은 비교할 수도 없이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이처럼, 우리가 겪을 고통도 순간임을 기억하라(:9-11) 이 길은, 이 땅에서의 주님의 삶과 흡사하다. 주님은, 멸시와 모멸 중에 죽으셨지만, 부활의 영광을 취하셨다. 그 영광이 우리에게도 예비되어 있다. 하지만, 부활의 영광 이전에, 고난의 거친 길과 좁은 문도 기다리고 있음도 잊지 마라.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회복의 약속을 받은 자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4.(맺는 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장유 땅에, 두 감람나무와 촛대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 사명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끼리만 만족하고 누리면서, 즐기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자라났다면, 이제는, 세상을 향해 분명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 일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이 부름 앞에 기쁨으로 충성하여, 주님의 영광스러움을 함께 누리는 성도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