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72.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2) (계21:9-22:5)

(도입) 오늘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①구조와 ②구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와 아울러, ③우리가 거기서 어떤 생활을 하게 될 것인지도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
1. 예루살렘성은,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네모반듯하게 동일하다.
벽옥으로 된 백사십 사 규빗의 성곽에 둘러쳐진, 예루살렘성 자체는, 맑은 유리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다. 그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각각 일만 이천 스다디온(: 대략 2,400km로 한반도 길이의 두 배반 가량)인 정육면체의 구조물이다. 성전의 제일 안쪽에 있던, 지성소를 떠올리게 한다(왕상6:20)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이며,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은혜와 죄사함을 통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곳이다. 즉,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이 땅에서 미리 보여주셨던 지성소의 성취다. ‘일만 이천’ 이라는 숫자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 치유하심과 은혜‘ 를 만끽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충분하고도 온전하며 완전한 공간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상징하기 때문에, 위치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거룩해진 성도의 ’완성‘ 을 뜻하며, 어린 양의 신부인 교회로서, 구원의 완성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 을 가리킨다.
2. 예루살렘성은, 그 구성을 모두 보석으로 비유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성곽의 기초석은 열두 가지 보석이고, 열두 문은 진주, 성의 길은 유리같은 정금이라고 표현했다. 보석 그 자체라기보다는, 너무나 황홀하여 필설로 형언하기가 힘든 까닭에, 귀하고 아름다운 보석을 빌어 이해가 쉽도록 했을 뿐이다. 본문에서 인용한 새 예루살렘성의 보석은, ①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다(4:3) 종말의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할 것임을 상징한다. 또한, ②회복된, 새 예루살렘의 영광과 순결,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의미한다. 어린 양의 신부인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정말 소중한 존재이며, 얼마나 거룩하고 영광스러우며 순결한 공동체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표현이다. 그리고 ③큰 음녀인 큰 성 바벨론의 ‘거짓된 영광과 오염된 불순함’ 을 대조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17:4) 우리가 누릴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이 추구하는 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대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믿음의 걸음을 걸어가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씀해주신다. 이윽고, 성(城)안으로 들어가보면 ①예루살렘성에는 성전이 없다. 진정한 성전이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계시기 때문이다. (구조물로서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표상에 불과하다. 참 성전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성전이심을 분명히 보여주셨다. 부활하심으로써, 성령으로 임하셔서 우리를 성전으로 삼아주셨다. 그래서, 건축물인 성전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서도 필요 없다. (성
전과 예배당은 다르다) 또한, ②예루살렘 성에는 해와 달의 빛이 필요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쳐주고, 어린 양이 등불이 되시기 때문이다. 만국이 거기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결코 들어가지 못하는 자도 있다. 속된 것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들어간다.
3. 그러면, 거룩한 성인 ‘새 예루살렘’ 에 들어가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축성의 자재가 각종 보석인 새 예루살렘성과, ‘보좌로 부터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발원하여 길 가운데로 흘러가고, 강의 좌우에는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다’ 는 기록은.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에서부터 강이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는 땅에 각종 보석이 있다’ 던 에덴의 재현이다(창2:10-14) 에덴에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뜻이다(22:1-5)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첫 창조의 에덴보다 더 온전하고 완전한 삶을 살게 된다. 에덴에서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모든 가능성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범죄하여 닫혔던 생명나무에로의 길이 드디어 열린다. 열두 가지 열매는 산술적인 개념의 표현이 아니다. 풍성함을 나타낸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된다. (천국을 소망하는 가장 최고의 이유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받았던 저주이후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사람은 다 죽게 되었다. 그래서, 모세조차도 하나님에게서 얼굴을 돌려, 뒷모습만 봤다. 그런데, 이제는 마주 보게 된다. 이 상황을 미리 예수님께서 느끼게 해주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시므로 친히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고(요1:18) 빌립에게도 동일한 맥락으로 대답해주셨다(요14:8-9)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 는 말씀은, 눈물이나 애통, 곡과 죽음이 없는 은혜를 누리면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는 뜻이다.
4. (맺는 말)
장차 우리는, 참으로 풍성하고 넉넉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게 된다. 아름답고 복된 모든 것들을 누리면서, 아담과 하와에게 위임하셨던 권세와 능력으로 만물을 통치하며 왕노릇 하게 된다. 사도요한을 통해 기록한 계시록은,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곳이 분명히 정해졌다고 알려주시면서, 이 땅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질문하신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성실하시다.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내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열심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복이다. 무엇을 위해서, 어떤 가치를 위해서 살아가야 할 것인지, 무엇을 위하여 자신의 힘과 능력을 사용해야 될 것인지를 깊이 묵상해보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지혜와 힘을 구하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이 땅을 살아내는 인내를 통하여, ‘믿음을 지켜내는’ 주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란다.